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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6 탐구의 방법

그다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발전하는 듯 하다. 아마도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보다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보다 항상 옳은 판단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의 내가 10개의 문제 중 5개를 풀었을 때 미래의 나는 7개 정도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미래의 내가 틀린 3개의 문제 중 현재의 내가 맞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많은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풀 수 있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듯 하다.*1
10년간 뇌사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사람의 생각은 전혀 발전할 수 없지만 10년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의 생각은 발전했을 것이다. 양자의 차이는 단지 10년간 얻은 정보의 양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 차이가 발전의 정도를 결정했다. 사실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을 발전이라고 이야기한다 면 발전은 곧 정보의 양에 비례한다. 라플라스 변환을 아는 사람은 평범한 방법으로 적분이 되지 않는 함수를 적분할 수 있다. 또한 경제학적 원리에 입각한 문제해결방식을 아는 사람은 보다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마주친 문제를 물 수 있기에 문제 해결능력의 향상은 정 보의 양에 비례한다.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을 바꾸었을 때에도 우리의 문제해결능력은 향상된다. 칸트는 객관을 주관 안에 두는 방식으로 근대철학자들의 오랜 논쟁을 해결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꾸어 마이켈슨-몰리의 이해할 수 없는 실험*2을 설명해 냈다. 그 외에도 플라톤,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여러 사람들이 접근 방식을 바꾸는 방법으로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을 이루었다. 결국 접근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문제해결방식을 장조해낸다.
그들은 천재이기 때문에 접근방식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천재가 아니기에 접근방식의 변화를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 어떠한 규칙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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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대하기 직전에 해석학 수업을 들었다. 해석학이란 우리가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수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3
〈우 리는 텍스트를 대하기 전에 일종의 편견을 갖는다. 이 편견을 선이해라 한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선이해가 만들어놓은 한계 - 지평 - 속에서 이루어진다. 각자의 선이해 와 모순되는 텍스트는 선이해 속 에서 해석되지 않는다. 이 때 각각의 선이해는 텍스트 속의 선이해와 융합하여 새로운 선이해로 변화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선이해가 만나 하나의 선이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지평융합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선이 해는 다시 다른 텍스트들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며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문 제해결을 위한 두 가지 과정 속에 이러한 지평융합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나의 머리 속에는 라플라스 변환에 대한 내용이 없다. 나는 라플라스 변환에 대한 텍스트를 읽어 텍스트 속의 선이해를 나의 선이해 속에 받아들인다. 그 과정이 끝나면 나는 라플라스 변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나의 선이해에 새로운 선이해가 덧붙여지는 과정이다. 엄밀히 말해 이 과정은 지평의 흡수이며 지평의 융합이 아니다. 접근방식을 바꾸는 경우에는 보다 지평융합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난다. 이 경우에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만나 기 보다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만나게 된다. 합리론과 경험론, 뉴턴역학과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은 모순되기 때문에 서로 이해되지 않는다. 합리론자들은 경험에 의지하지 않은 지식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험론자들은 경험에 의지하지 않은 지식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뉴턴역학에서 움직이는 물체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속력은 두 물체의 속력을 합친 것으로 관측되지만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에서는 두 물체의 속력이 합해지지 않았다.
모순된 생각은 모두 옳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생각이 옳고 다른 생각이 틀릴 수는 있다. 여기에 근거하여 모순에 대처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 옳은 생각과 틀린 생각을 나누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1은 2와 같다’라는 주장과 '1 + 1은 3과 같다’라는 주장의 대립은 참/거짓을 가리는 방법으로 모순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위의 예시에 적용해 보자. 합리론자가 옳다면 경험론자는 틀리고 뉴턴역학이 옳다면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은 틀리다.
칸트나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모순된 두 생각을 모두 옳게 하는 지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만 들어낸 새로운 생각은 인식의 합리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각은 뉴턴의 역학과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모순을 대립을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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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학적 접근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해석학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난류에 대한 유체역학 전공서적을 보여준 다면 우리는 그 책을 아예 읽으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4 또한 몇몇 기독교인은 니체나 포이어바흐의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몇몇 반기독교인은 파스칼이나 C.S 루이스의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해능력의 부족에 대한 문제이건 감정적 문제이건 우리가 이해의 과정을 포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석학은 그 의의를 상실할 가능성을 갖는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 생각의 한계를 탐구할 수 없다. 해석학은 두 생각의 이해를 다루는 학문일 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학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생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생각은 다시 우리의 생각 속으로 포함된다. 즉 우리는 우리 생각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을 뿐 우리 생각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해석학은 생각과 생각의 만남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데 부적합하다.
그러나 해석학은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한계를 탐구하는데 대한 일종의 힌트를 준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의 만남이 바로 그 힌트이다. 한계는 언제나 두 영역의 경계면에서 드러나기에 우리 생각의 한계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의 사이에서 드러난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빨간 동시에 파란 도형을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위로 올라가는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를 생각할 수 없다. 이 표현들 에 대응되는 물체는 우리의 생각 속에 없다. 이러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 생각의 한계를 나타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계속 바라 볼 때 우리 생각 의 한계는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1 : 10개의 문제중에 1개의 문제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고 9개의 문제는 우리의 편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가정하자. 우리가 5개의 문제밖에 풀지 못하더라도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불편해도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7개의 문제를 풀더라도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풀 수 없다면 편리한 세상에서 죽어갈 것이다.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을 발전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뉴턴역학에 따르면 움직이는 사물에서 발사된 사물은 두 사물의 속력을 합한 만큼의 속력을 갖는다. 간단히 말해 100km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150km의 속력으로 공을 던지면 그 공은 땅에서 보기에 250km의 속력을 갖는다. 마이켈슨-몰리는 이 현상이 빛에서도 나타나는지 실험해 보았다. 그들은 빛이 지구의 공전방향과 반대로 진행할 경우 속력이 느려지고 공전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할 경우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빛은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속력으로 움직였다. 뉴턴의 역학체계에서는 이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 다.
*3 나는 '해석학이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하시오’라는 문제에 '개별적 인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답했다. 약간 자랑같지만, 이 답변은 A+을 받았다.
*4 난류에 대한 유체역학은 기본적으로 x축, y축, z축에 대한 삼중적분을 실시한다. (....) 그렇다고 공식이 깔끔하냐? 아니다. 더럽게 복잡하다.
유 체역학 교수님이 박사과정을 하시던 중에 이런 시험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 '맛있는 커피를 타기 위한 커피, 설탕, 프림의 앙은?' (.....)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커피잔을 3차원으로 모델링하고 커피, 설탕, 프림의 용해열을 구한 후 x, y, z축으로 열이 빠져나가는 정도를 계산하고 기화열 등등을 고려해서 손으로 물 수 없는 공식을 만들어 수치해석으로 근사값을 구해서 답을 제출했더니 80점 나왔다고 한다. (... 그저 토가 나올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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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부분적으로만 완성된 글이다. -_-; 이 글에서는 모순을 통해 드러나는 한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한계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