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 로보쓰띠 미안해요. ;ㅁ;... 지원사격이라고 말해놨는데 지원사격이 아닌거 같음 -_-; 좀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신중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크게 실수했음.;
이 글은 로보스씨의 블로그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한 간략한 글이다. 로보스씨가 상대주의에 관한 글을 올렸고, J0hnLennon이라는 분이 트랙백을 걸어놓은 곳에서 논쟁이 시작한다.
로보스씨의 글 -> Why Relativism?
J0hnLennon의 글 -> 과학도 종교와 같은 믿음? - 과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
나는 아쉽게도 이 두 글의 핵심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두 글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J0hnLennon이 자신의 포스팅에 달아놓은 부제에 주목한다.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이라는 말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오해'라는 단어는 옳음과 틀림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다. 또한 '오해'라는 단어는 오해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오해하지 않는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 낮다는 의미를 갖는다. 웬만큼 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오해'라는 말이 불쾌감을 자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로보스씨의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보스씨는 과학의 정밀성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하지만, 과학이 진리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중국어를 모르지만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예시를 든다. 이 예시의 핵심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중국어를 잘하는 것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중국어를 몰라도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어떤 사람의 중국어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로보스씨는 이 결론을 과학에 적용한다. 즉, 로보스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과학적 현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현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단지 가설이요, 모형일 뿐 실제나 본질, 진리가 아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계몽주의를 경계한다. 계몽주의는 단지 모델에 근거한 이론들을 실제나 진리의 위치에 놓는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는 사람들이 단지 모델에 불과한 이론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우리 인류의 발전에도 해가 된다. 우리가 최선의 이론을 선택하려면 다양한 이론의 경합이 필수적인데, 계몽주의는 이론의 경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계몽주의는 다양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말하며, 단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배제하는 계몽주의는 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익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우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외려 계몽이 철저하게 이루어졌을 때 최악의 파괴를 낳으며, 비판정신의 결여를 낳는다. 계몽을 통한 비판정신의 결여야 말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또한 내 입장에서 J0hnLennon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안하지만 중간에 접어두신 부분은 제외하겠습니다. 다만,“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이라는 제목은 저에게 도킨스가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주는군요. 닥치고 '모른다'라고 하는게 제일 정직할 겁니다. 니체형님조차 '모르겠다. 십라... 근데, 있으면 어쩔껀데?'라고 한데다가 어딜 감히 말장난을... -_-!)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과학법칙이 완벽하다고 생각은 편견 내지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 역시 믿음에 기반하나, 그 믿음은 완벽함을 상정하는 종교적 믿음과는 다르다. 과학이 완벽하다는 믿음은 과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조금 모순처럼 들리지만, 반례에 대한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진화론을 배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근거는 과학의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만유인력은 질량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우리는 만유인력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진화론의 부족한 점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부분은 동영상에 대한 설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상대주의 싫어하는 과학 빠돌이가 우리 로보스띠를 건드렸구낫!! 조지러 가자 -_-!' 이랬는데.; 살짝 당황했습니다. 최소한 과학에 국한한다면, 양쪽의 생각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J0hnLennon님이 로보스씨의 글에 반론을 건 이유가 로보스씨의 예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로보스씨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과학이 진리의 위치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보스씨는 이를 비판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로보스씨는 과학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J0hnLennon님과 로보스씨의 생각은 여기에서 일치합니다.
제 생각에 J0hnLennon님의 관점에서 로보스씨의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 로보스씨가 서술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지만, J0hnLennon님께서는 다음의 두 가지중 하나를 비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과학을 진리로 생각하는 과학자들
2.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신념.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해 로보스씨와 J0hnLennon님의 생각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 대해 두 분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로보스씨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 또는 원리 또는 결과물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며, J0hnLennon님은 '과학자들 역시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한거 같으니까, 두 번째 문제를 잠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생각할까요? 혹은 그렇지 않을까요?
공부 지지리도 안하는 저로서는 사실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철학에는 '소박실재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소박실재론이란 실재론의 한 유형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러합니다. 자. 제 옆에는 지금 컵이 있습니다. 컵은 '실제로'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컵은 실재한다.'가 되지요.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로보쓰띠나 J0hnLennon님도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어쨌건 골치 아픈거 좋아하는 이상한 회의주의 철학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실재론자'입니다. 저로서는 소박실재론이 여기에서 '그러니까 사물은 실재한다.'까지 논지를 발전시키는지 잘 모릅니다만, 그들의 개략적인 근거는 이러합니다.
저는 과학자들 역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재하는 사물은 객관성을 전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의론자가 '컵같은거 있는지 없는지 몰라!'라고 외쳐도 소박한 저의 마음은 '컵이 여기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회의론자가 뭐라고 지껄이건, 컵의 존재에 대한 저의 믿음은 변하지 않지요. 수백만명이 저에게 '컵은 없어.'라고 새도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조금 특이한 예로 정신분열증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종 착각을 하며, 환상의 사물을 본다고 합니다. 가령 '으악. 다람쥐들이 내 몸을 물어뜯고있어!'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람쥐같은거 없어!'라고 이야기해줘도,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람쥐를 느낍니다.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 없이 존재합니다. 즉 다람쥐는 객관적 사물이지요.
객관적 사물에 대한 진술은 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반론이 잇을 수는 있겠지만 참이나 진리, 진실과 같은 단어들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며, 그 단어들의 엄밀한 구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외려 그 단어들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에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참된 진술을 진리로 착각하는 현상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소박실재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물을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참과 진리, 진실에 대한 구분을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진리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밀히 말했을 때 과학과 진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걸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급하는건 그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이는 그들의 주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하는 태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재론적 주장'과 '실재론적 태도'를 구분합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재론적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십명의 사람들과 맞짱을 뜬,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들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독교인의 마음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과학자들도 비이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실재론적 태도의 원인입니다.
도킨스 역시 이 비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 그건 '모르는'겁니다.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일 뿐입니다. '나는 이래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다르지요. 전자는 '객관적인'관점에서 확률적 주장을 하는데 반해, 후자는 주관적 관점에서 단지 자신의 생각을 나열합니다. 객관적인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전자의 의도를 볼 때, 저는 도킨스가 '실재론적 태도'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일부러 ()까지 쳐가면서 도킨스를 깐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다면, '신이 거의 존재할 것이라는..'이유를 제시하지요. 별거 아닙니다. 우주론적 증명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짬뽕하고, 대굇수 이승일씨의 '왜 세계에는 에러가 나지 않는가?'를 첨가하면 됩니다. 이승일씨의 관점을 조금 부연하지요. 괴델의 증명으로 인해 익히 알려졌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모순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장되지 않은 무모순성이 보장되기에, 무모순성을 보장하는 신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세계에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킨스. 나랑 싸우자. 1주일만 공부하면 싸울 수 있다. ㅅㅂㄹㅁ)
그러나. 이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말들은 제 관점에서는 모두 핑계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너희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 더 많은 말들은 악에서 나오느니라.' 대강 이렇습니다.
이상입니다. 요약하면, 저는 과학자들이 머리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적 태도'는 과학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과학자들을 실재론자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PS : '로보스님'이라고 하는거보다 '로보스씨', '로보쓰띠'라고 부르는게 왠지 정감이 감 -_-; (불만있어도 할 수 없음. :P. ㅋㅋㅋ)
PS 2 : 퇴고는 눈물만. (....) 원래 10시 반에 자는게 목표인데. 지금 11시 10분. 샤워도 해야되요. orz.....
이 글은 로보스씨의 블로그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한 간략한 글이다. 로보스씨가 상대주의에 관한 글을 올렸고, J0hnLennon이라는 분이 트랙백을 걸어놓은 곳에서 논쟁이 시작한다.
로보스씨의 글 -> Why Relativism?
J0hnLennon의 글 -> 과학도 종교와 같은 믿음? - 과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
나는 아쉽게도 이 두 글의 핵심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두 글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J0hnLennon이 자신의 포스팅에 달아놓은 부제에 주목한다. '일반인들이 가지기 쉬운 오해들'이라는 말에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오해'라는 단어는 옳음과 틀림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다. 또한 '오해'라는 단어는 오해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오해하지 않는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 낮다는 의미를 갖는다. 웬만큼 강한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오해'라는 말이 불쾌감을 자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로보스씨의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보스씨는 과학의 정밀성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하지만, 과학이 진리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중국어를 모르지만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예시를 든다. 이 예시의 핵심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중국어를 잘하는 것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중국어를 몰라도 중국어 사전을 통해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어떤 사람의 중국어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로보스씨는 이 결론을 과학에 적용한다. 즉, 로보스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과학적 현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현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은 단지 가설이요, 모형일 뿐 실제나 본질, 진리가 아니다.
이를 근거로 로보스씨는 계몽주의를 경계한다. 계몽주의는 단지 모델에 근거한 이론들을 실제나 진리의 위치에 놓는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는 사람들이 단지 모델에 불과한 이론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우리 인류의 발전에도 해가 된다. 우리가 최선의 이론을 선택하려면 다양한 이론의 경합이 필수적인데, 계몽주의는 이론의 경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계몽주의는 다양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말하며, 단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배제하는 계몽주의는 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익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우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계몽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외려 계몽이 철저하게 이루어졌을 때 최악의 파괴를 낳으며, 비판정신의 결여를 낳는다. 계몽을 통한 비판정신의 결여야 말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또한 내 입장에서 J0hnLennon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안하지만 중간에 접어두신 부분은 제외하겠습니다. 다만,“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이라는 제목은 저에게 도킨스가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주는군요. 닥치고 '모른다'라고 하는게 제일 정직할 겁니다. 니체형님조차 '모르겠다. 십라... 근데, 있으면 어쩔껀데?'라고 한데다가 어딜 감히 말장난을... -_-!)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과학법칙이 완벽하다고 생각은 편견 내지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 역시 믿음에 기반하나, 그 믿음은 완벽함을 상정하는 종교적 믿음과는 다르다. 과학이 완벽하다는 믿음은 과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조금 모순처럼 들리지만, 반례에 대한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진화론을 배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근거는 과학의 모든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만유인력은 질량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유인력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우리는 만유인력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진화론의 부족한 점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부분은 동영상에 대한 설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상대주의 싫어하는 과학 빠돌이가 우리 로보스띠를 건드렸구낫!! 조지러 가자 -_-!' 이랬는데.; 살짝 당황했습니다. 최소한 과학에 국한한다면, 양쪽의 생각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J0hnLennon님이 로보스씨의 글에 반론을 건 이유가 로보스씨의 예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로보스씨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과학이 진리의 위치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보스씨는 이를 비판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로보스씨는 과학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J0hnLennon님과 로보스씨의 생각은 여기에서 일치합니다.
제 생각에 J0hnLennon님의 관점에서 로보스씨의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 로보스씨가 서술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지만, J0hnLennon님께서는 다음의 두 가지중 하나를 비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과학을 진리로 생각하는 과학자들
2. 과학자들이 '과학을 진리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신념.
첫 번째의 경우에 대해 로보스씨와 J0hnLennon님의 생각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에 대해 두 분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로보스씨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 또는 원리 또는 결과물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며, J0hnLennon님은 '과학자들 역시 과학을 진리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한거 같으니까, 두 번째 문제를 잠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생각할까요? 혹은 그렇지 않을까요?
공부 지지리도 안하는 저로서는 사실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철학에는 '소박실재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소박실재론이란 실재론의 한 유형입니다. 내용은 대강 이러합니다. 자. 제 옆에는 지금 컵이 있습니다. 컵은 '실제로'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컵은 실재한다.'가 되지요.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로보쓰띠나 J0hnLennon님도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어쨌건 골치 아픈거 좋아하는 이상한 회의주의 철학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실재론자'입니다. 저로서는 소박실재론이 여기에서 '그러니까 사물은 실재한다.'까지 논지를 발전시키는지 잘 모릅니다만, 그들의 개략적인 근거는 이러합니다.
저는 과학자들 역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재하는 사물은 객관성을 전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의론자가 '컵같은거 있는지 없는지 몰라!'라고 외쳐도 소박한 저의 마음은 '컵이 여기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회의론자가 뭐라고 지껄이건, 컵의 존재에 대한 저의 믿음은 변하지 않지요. 수백만명이 저에게 '컵은 없어.'라고 새도 저는 컵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조금 특이한 예로 정신분열증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종종 착각을 하며, 환상의 사물을 본다고 합니다. 가령 '으악. 다람쥐들이 내 몸을 물어뜯고있어!'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람쥐같은거 없어!'라고 이야기해줘도,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람쥐를 느낍니다. 최소한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 없이 존재합니다. 즉 다람쥐는 객관적 사물이지요.
객관적 사물에 대한 진술은 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반론이 잇을 수는 있겠지만 참이나 진리, 진실과 같은 단어들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며, 그 단어들의 엄밀한 구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외려 그 단어들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에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참된 진술을 진리로 착각하는 현상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과학자들이 소박실재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물을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참과 진리, 진실에 대한 구분을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진리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물론 그들은 엄밀히 말했을 때 과학과 진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걸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급하는건 그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이는 그들의 주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하는 태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재론적 주장'과 '실재론적 태도'를 구분합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재론적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십명의 사람들과 맞짱을 뜬,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들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독교인의 마음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과학자들도 비이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실재론적 태도의 원인입니다.
도킨스 역시 이 비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 그건 '모르는'겁니다.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일 뿐입니다. '나는 이래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다르지요. 전자는 '객관적인'관점에서 확률적 주장을 하는데 반해, 후자는 주관적 관점에서 단지 자신의 생각을 나열합니다. 객관적인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전자의 의도를 볼 때, 저는 도킨스가 '실재론적 태도'를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일부러 ()까지 쳐가면서 도킨스를 깐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싶다면, '신이 거의 존재할 것이라는..'이유를 제시하지요. 별거 아닙니다. 우주론적 증명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짬뽕하고, 대굇수 이승일씨의 '왜 세계에는 에러가 나지 않는가?'를 첨가하면 됩니다. 이승일씨의 관점을 조금 부연하지요. 괴델의 증명으로 인해 익히 알려졌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모순성이 보장되지 않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장되지 않은 무모순성이 보장되기에, 무모순성을 보장하는 신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세계에 모순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킨스. 나랑 싸우자. 1주일만 공부하면 싸울 수 있다. ㅅㅂㄹㅁ)
그러나. 이건 닥치고 '모르는'겁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말들은 제 관점에서는 모두 핑계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너희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 더 많은 말들은 악에서 나오느니라.' 대강 이렇습니다.
이상입니다. 요약하면, 저는 과학자들이 머리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재론적 태도'는 과학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과학자들을 실재론자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PS : '로보스님'이라고 하는거보다 '로보스씨', '로보쓰띠'라고 부르는게 왠지 정감이 감 -_-; (불만있어도 할 수 없음. :P. ㅋㅋㅋ)
PS 2 : 퇴고는 눈물만. (....) 원래 10시 반에 자는게 목표인데. 지금 11시 10분. 샤워도 해야되요.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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