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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9 관용의 목적 (2)

<군 인트라넷 게시판에서 프랑스의 소수민족 폭동에 대한 논쟁을 보고 적은 글입니다.>

관용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고 짤막하게 적어 봅니다.

고대 이베리아반도의 중부지역은 여러 군소 국가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상태였다. 각 국가의 세력권이 서울시의 면적보다도 좁았을 정도이다 로마는 이런 자그마한 도시국가 - 아니. 마을국가- 들을 합병하며 성장했다. 이베리아반도 중부의 강자가 된 로마는 마침내 이베리아반도 북부에서 세력을 떨치던 에트루리아를 함락시켰다.
에트루리아가 함락되자 로마는 북부의 야만족인 켈트족의 침략에 정면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강국인 에트루리아를 멸망시키기 위해 로마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기에 로마는 켈트족의 침입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로마는 켈트족에게 함락 당하고 상당수의 금은과 여러 사람들을 포로로 내주고서야 켈트족이 떠나가도록 달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동안 로마의 힘에 눌려 살았던 군소 국가들이 반기를 들었다. 켈트족에게 함락 당해 많은 사람과 물자를 잃은 로마가 힘을 잃은 틈을 탄 것이다 로마는 군소 국가의 반발을 억누르는데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창안했다

역사가 토인비가 '정치건축의 걸작'이라고 평한 '로마연합'은 다음과 같은 항목들로 요약할 수 있다.
l. 로마에게 정복당한 도시국가는 내정의 자유를 갖는다.
2. 로마에게 정복당한 도시국가는 자주적인 외교권을 상실한다.
3. 로마에게 정복당한 도시국가는 로마의 중재를 통한 간접적인 외교권을 갖는다.
로마가 성장하면서 상대하는 민족의 다양해졌기에 로마연합의 내용도 점점 복잡해지지만 위의 기본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이는 초창기 로마의 정책에 비해 비교적 불관용적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초창기 로마는 자신이 정복한 국가에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과의 동맹을 요구하고, 자신이 정복한 부족 중 희망자를 받아 로마로의 이주를 장려했을 뿐이다. 로마로 이주한 피정복자는 완전한 로마 시민으로서 참정권까지 부여받았다. 이처럼 관용정책을 취했지만 로마에 정복당한 나라들이 로마가 약해졌을 때 서로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렇기에 '로마연합' 체제에서는 그 나라들의 독자적인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이다.

로마는 한 번의 실패를 통해 관용과 불관용의 균형점을 찾았다. 그 균형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유롭되 자가와 다른 세력의 관계에 대한 부자유'로 요약된다. 정복자라고 해서 피정복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빼앗으면 피정복자는 정복자에게 대놓고 반항하게 된다. 그러나 피정복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으면 피정복자는 정복자의 눈치를 보고 반항하게 된다. 실제로 2차 포에니전쟁 직후 코린트와 누만티아는 완전한 관용정책을 취한 정복자 로마를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로마는 다른 피정복자의 반발을 고려하여 코린트와 누만티아를 멸망시켜 지도에서 삭제하였다.

로마는 자신의 방어를 위해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해야만 했다. 또한 자신을 대놓고 적대시하는 켈트족이나 한니발, 기타 동방 왕국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로마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민족을 정복해야만 했다, 정복까지는 오히려 쉽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복당한 민족을 힘으로 억누르기만 하면 로마의 군사비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 결과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인한 파멸이다. 따라서 관용정책을 위해야만 하는데, 완전한 관용정책의 결과는 피정복자의 멸시이다. 이 경우 피정복자의 반항으로 인해 군사비의 증가가 요청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피정복자와의 공존이다. 공존이란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차피 로마가 피정복자를 정복하는 이유는 자신의 방어를 위함이다. 따라서 피정복자가 자신을 공격할 생각을 품지 않도록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로마가 관용정책을 사용한 이유는 자기 보존에 있다. 로마가 피지배자의 외교권을 제한한 불관용정책을 사용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의 불관용정책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한 심사숙고에서 내린 결정이다.

우리가 관용을 해야하는가? 말아야하는가?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관용을 하기 때문에 손해가 생갈 수 있으며 관용을 하지 않기에 손해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관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해, 불관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정확히 파악해야한다 그제야 우리는 적절한 관용의 정도를 지정할 수 있다

관용의 적절한 지점은 그 사회마다 다르다. 프랑스처럼 중앙집권적 전통이 있는 사회는 불관용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관용정책을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게 타당하며, 미국처럼 여러 주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관용정책을 사용하는 게 타당하다. 다른 말로 바꾸어 불관용정책은 프랑스에 유리하고 관용정책은 미국에 유리하다.

불론 이상적으로는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찾아 동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람이 쉽게 바뀐다고만 가정할 수는 없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보다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문자메시지를 보낼 줄 모르신다. 핸드폰이 보편화된 지 십여년이 넘었지만 새로운 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어쩌면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관용도 마찬가지이다. 핸드폰 문자메시지조차 적응하기 어려운데,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자선이 수십 년 간 살아온 문화의 단점을 찾고 다른 문화의 장점을 찾아보리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어쩌면 '얼굴 맞대지 않고 사는 것’일수도 있다.

도가에 속한 학자와 유가에 속한 학자가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유가 : '예의가 중요한가? 몸이 중요한가?'
도가 : '몸이 중요하다.'
유가 : '폭우가 내리는 날에 황제께서 당신의 집을 방문하였다. 당선은 옷이 젖어 당신의 몸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어가를 맞지 않을 것인가?'
노가 : '당신은 어찌 몸의 지극히 가벼운 것과 예의의 지극히 중한 것을 비교하는가?'
('꼴통들과 화내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 이라는 책에서 재인용. 의미는 통하나 내용 자체는 부정확함)(지금 책이 없어요.)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도 이와 같지 않을까. 관용이 우선적으로 중요한지 불관용이 우선적으로 중요한지 판단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각 사안에 대한 관용과 불관용의 중요성과 정도는 다르다. 그때 그 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직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상적으로는 우리가 새로운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전제하고 관용해야 하나, 현실적으로는 관용할 수 없는 부분을 적당히 통제하여 사회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상을 이야기할 때는 플라톤이 지적했듯 그것이 '현실에 대한 옳은 본보기'임을 잊지 말아야하며, 현실을 이야기할 때에는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잊지 맡아야 한다. 그제야 관용에 대한 이야기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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