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 두 번의 군사적 위기를 겪고 내부갈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군사적 위기를 잘 넘겼지만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내부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로마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는 반드시 단결했고, 위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내부적인 갈등요소가 있더라도 로마는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국을 건설할 지혜를 얻게 됩니다.
        두 번의 군사적 위기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포르센나의 로마 공격으로 인해 촉발되었고, 두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켈트족의 로마 점령을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센나와 켈트족이 물러간 이후에는 항상 라틴동맹의 내부분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라틴동맹'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즉, 내부분열의 원인은 로마에 반대하는 도시가 로마의 약화를 틈타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로마는 배신한 도시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백 년간 두 번이나 로마를 배신한 라틴동맹을 해체합니다. 그 대신에 새로운 동맹체제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연합'입니다. 새로운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이제 막 재정복된 라틴 동맹의 도시들이 갖고 있을 로마에 대한 증오감을 해소해야 했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힘에 상관없이 도시간의 견고한 결합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셋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로마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폅니다. 우선 동맹에 속할 각 도시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조약을 체결합니다. 첫 번째 등급의 도시는 독립을 상실하고 로마에 편입됩니다. 대신에 그들은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얻고, 스스로를 위한 자치정부를 갖습니다. 두 번째 등급의 도시는 '무니키피아'라고 불리며, 투표권이 제외된 로마 시민권을 갖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되, 관직에 선출되거나 관리를 선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들은 전쟁 발발 시 로마에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급여는 로마에서 지불하게 됩니다. 이 도시들 역시 자치권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등급의 도시는 '소키'라고 불리며 로마와 군사적인 동맹만을 맺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요청이 있을 때 자체 비용으로 병력을 지원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의 특성에 따라 다른 조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로마연합'의 모든 도시는 독자적인 외교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외교적인 관계는 오로지 로마와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국 시민이나 동맹국 시민을 파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이 도시들은 전략적 요충을 점거하는 동시에 각 도시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로마는 위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시들은 단지 외교권만을 상실하고 완전한 자치를 허용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낼 의무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군사력이 강한 로마를 통해 군사적인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가 관용을 베풀었으므로, '로마연합'의 첫 번째 목적은 달성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 도시는 자체적인 외교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도시가 연대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들을 차지했으므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은 근절되었고, 로마는 새로운 동맹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인 병력의 확보도 실현되었습니다. 모든 조약에 직접적으로 병력제공 및 상호방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는 '로마연합'을 통해 각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외교감각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도 '로마연합'과 같은 원리로 스위스의 내분을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우리나라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루어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마연합'체제에는 이런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의 세력이 연합에 가입한 각 도시와 전국에 퍼져있는 식민지로 분산되는 단점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가도'를 만들었습니다. '로마가도'덕분에 지역과 중앙의 연락이 쉬워졌으며, 유사시에 군대를 신속하게 모집하고 파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지적대로 로마인들은 정략적 목적으로 도로망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로마가도'를 역사가들이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마사>와 <로마제국사>에는 로마가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로마문명사>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대한 언급을 소홀히 합니다. 그들이 로마가도를 낮게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만드는데 들어간 인력과 물자와 자금과 노력을 생각할 때, 로마인들은 로마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로마인들이 로마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사를 다룰 때에도 로마가도를 자세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로마인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도로망 건설을 중시했으나,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와 같은 해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로마가도'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다루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에 한정해서 <로마인 이야기>는 다른 책들보다 뛰어납니다.
        결국 로마는 동맹국들의 배신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로마연합'이라는 뛰어난 외교정책이고 두 번째는 '로마연합'을 뒷받침하는 가도의 건설입니다. 이 두 요소를 통해 로마는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 어려운 과제의 해결책을 -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새에 - 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낸 그들도 자국 내의 계급투쟁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평민은 조금씩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했고, 귀족들은 조금씩 후퇴하면서도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수백년간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대립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로마인들은 전쟁만 터지면 신기하게도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로마에는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휴지기가 있기는 했지만 삼니움전쟁, 피로스와의 전쟁, 북이탈리아 정복전쟁, 1, 2, 3차 포에니전쟁, 마케도니아 전쟁 등이 거의 2세기동안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는 평화가 찾아올 때 까지만 평화로웠습니다.
        이 전쟁들의 사이마다 로마는 내부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분쟁의 대다수는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그때그때 일시적인 해결을 보았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의 통치체제 및 관직체계가 완성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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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 두 번의 군사적 위기를 겪고 내부갈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군사적 위기를 잘 넘겼지만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내부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로마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는 반드시 단결했고, 위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내부적인 갈등요소가 있더라도 로마는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국을 건설할 지혜를 얻게 됩니다.
        두 번의 군사적 위기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포르센나의 로마 공격으로 인해 촉발되었고, 두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켈트족의 로마 점령을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센나와 켈트족이 물러간 이후에는 항상 라틴동맹의 내부분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라틴동맹'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즉, 내부분열의 원인은 로마에 반대하는 도시가 로마의 약화를 틈타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로마는 배신한 도시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백 년간 두 번이나 로마를 배신한 라틴동맹을 해체합니다. 그 대신에 새로운 동맹체제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연합'입니다. 새로운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이제 막 재정복된 라틴 동맹의 도시들이 갖고 있을 로마에 대한 증오감을 해소해야 했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힘에 상관없이 도시간의 견고한 결합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셋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로마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폅니다. 우선 동맹에 속할 각 도시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조약을 체결합니다. 첫 번째 등급의 도시는 독립을 상실하고 로마에 편입됩니다. 대신에 그들은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얻고, 스스로를 위한 자치정부를 갖습니다. 두 번째 등급의 도시는 '무니키피아'라고 불리며, 투표권이 제외된 로마 시민권을 갖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되, 관직에 선출되거나 관리를 선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들은 전쟁 발발 시 로마에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급여는 로마에서 지불하게 됩니다. 이 도시들 역시 자치권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등급의 도시는 '소키'라고 불리며 로마와 군사적인 동맹만을 맺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요청이 있을 때 자체 비용으로 병력을 지원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의 특성에 따라 다른 조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로마연합'의 모든 도시는 독자적인 외교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외교적인 관계는 오로지 로마와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국 시민이나 동맹국 시민을 파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이 도시들은 전략적 요충을 점거하는 동시에 각 도시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로마는 위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시들은 단지 외교권만을 상실하고 완전한 자치를 허용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낼 의무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군사력이 강한 로마를 통해 군사적인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가 관용을 베풀었으므로, '로마연합'의 첫 번째 목적은 달성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 도시는 자체적인 외교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도시가 연대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들을 차지했으므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은 근절되었고, 로마는 새로운 동맹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인 병력의 확보도 실현되었습니다. 모든 조약에 직접적으로 병력제공 및 상호방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는 '로마연합'을 통해 각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외교감각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도 '로마연합'과 같은 원리로 스위스의 내분을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우리나라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루어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마연합'체제에는 이런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의 세력이 연합에 가입한 각 도시와 전국에 퍼져있는 식민지로 분산되는 단점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가도'를 만들었습니다. '로마가도'덕분에 지역과 중앙의 연락이 쉬워졌으며, 유사시에 군대를 신속하게 모집하고 파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지적대로 로마인들은 정략적 목적으로 도로망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로마가도'를 역사가들이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마사>와 <로마제국사>에는 로마가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로마문명사>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대한 언급을 소홀히 합니다. 그들이 로마가도를 낮게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만드는데 들어간 인력과 물자와 자금과 노력을 생각할 때, 로마인들은 로마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로마인들이 로마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사를 다룰 때에도 로마가도를 자세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로마인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도로망 건설을 중시했으나,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와 같은 해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로마가도'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다루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에 한정해서 <로마인 이야기>는 다른 책들보다 뛰어납니다.
        결국 로마는 동맹국들의 배신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로마연합'이라는 뛰어난 외교정책이고 두 번째는 '로마연합'을 뒷받침하는 가도의 건설입니다. 이 두 요소를 통해 로마는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 어려운 과제의 해결책을 -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새에 - 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낸 그들도 자국 내의 계급투쟁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평민은 조금씩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했고, 귀족들은 조금씩 후퇴하면서도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수백년간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대립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로마인들은 전쟁만 터지면 신기하게도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로마에는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휴지기가 있기는 했지만 삼니움전쟁, 피로스와의 전쟁, 북이탈리아 정복전쟁, 1, 2, 3차 포에니전쟁, 마케도니아 전쟁 등이 거의 2세기동안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는 평화가 찾아올 때 까지만 평화로웠습니다.
        이 전쟁들의 사이마다 로마는 내부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분쟁의 대다수는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그때그때 일시적인 해결을 보았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의 통치체제 및 관직체계가 완성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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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을 로마에서 영원히 쫓아낸 후 로마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당한 위기의 원인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왕의 -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 복귀를 꾀하는 세력과 국가들로 인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변 민족들과의 전쟁이며, 세 번째는 정치체제의 변화로 인한 귀족과 평민간의 대립입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난 그는 한 에트루리아 도시의 왕인 '포르센나'에게 병력지원을 요청합니다. 포르센나는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의 말을 듣자 직접 로마를 공격합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왼손잡이 무티우스 이야기', '홀로 다리를 막은 호라티우스 이야기'등의 전설이 전해져 오며, <로마인이야기>에서는 이 전쟁을 '로마는 포위를 견디다가 에트루리아 영토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항복했다.'라는 정도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로마가 포르센나한테 케발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루키우스이야기나 호라티우스 이야기는 모두 신빙성이 거의 없습니다. <로마사>와 <로마제국사>는 이 전설들을 패전을 윤색하기 위한 로마의 전쟁광고로 묘사합니다. <로마제국사>에서는 '로마는 정복한 에트루리아영토를 반납했고, 연이은 라틴인의 공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당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 거의 한 세기가 소모되었다.'라고 이야기하며, <로마사>에서는 '포르센나가 로마를 함락한 듯 하다.'라고 서술합니다.
        포르센나는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로마의 정치체제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 합니다. 그 결과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왕위를 되찾는데 실패하고, 로마는 공화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전쟁에 연이어 라틴동맹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로마는 이 내전으로 인해 또다시 많은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 시기에 입은 손실을 회복하는 데에는 백여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후 로마는 다시 예전의 세력을 회복했습니다. 다시 강해진 그들은 에트루리아의 주요도시인 '베이'를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켈트족이 로마로 쳐들어오게 됩니다. 켈트족은 일곱 달 동안 로마를 점령하고 300~500 킬로그램의 금을 받은 후 떠나갔습니다. 로마는 이 때 매우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켈트족이 떠난 이후 여러 가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반란에 관한 기록들이 조금 불분명합니다. <로마사>의 서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갓 점령한 에트루리아 지방과 몇몇 라틴도시들이 먼저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반란이 진압되고 난 이후 삼니움족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서 로마는 어느 소도시를 삼니움족에게 내어주고 대신 대도시 카푸아를 자기 세력권에 편입합니다. 여기에 배신감을 느낀 라틴동맹의 다른 도시들이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로마인이야기>에서는 이러한 구분 없이 전쟁이 연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기에 난데없이 그리스 역사를 삽입한 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버립니다. <로마제국사>는 전쟁에 대한 구분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계속 전쟁중이었던 것으로 묘사합니다. <로마문명사>에서는 <로마사>와 유사하게 두 전쟁의 시기를 구분합니다. 이처럼 상반된 관점이 있으므로 이 시기의 전쟁을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의 세 가지는 확실합니다. 로마는 켈트족의 침입 이후 거의 한 세기동안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는 '카밀루스'라는 위대한 장군을 통해 극복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쟁이 끝난 후 로마는 '라틴동맹'을 해체하고 새로운 체체를 출범시킵니다.
        로마의 국내 정치상황도 매우 불안했습니다. 일단 왕을 없애기는 했지만,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사>에서는 세 가지 설을 제시합니다. 초보적인 집정관-법무관 체제, 독재관 체제, 3인의 법무관 체제가 그것입니다. 이 중 초보적인 집정관-법무관 체제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치제제가 딱히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칸슐러 트리뷴'이라는 3-9명으로 이루어진 관직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인이야기>에서 언급한 6인의 전략담당관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당시 로마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기록이 불명확하고 여러 가지 제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명확성에 근거하여 추측할 때, 아마도 이 당시 로마는 여러 가지 정치체제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1)
        다만 이 모든 불명확한 주장들에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로원의 권한 강화가 그것입니다. 모든 실험들은 왕을 대신할 관직을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관직을 받을 인재를 고르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당시 유능한 인재는 모두 원로원에 소속된 귀족이었습니다. 왕을 대신할 관직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귀족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왕의 권한이 원로원에 포섭되었고, 원로원은 조언기관의 역할에서 조금씩 벗어나 실제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원로원은 국가의 비상시에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로마인이야기>에서 인용한 폴리비오스의 지적은 오류라고 생각됩니다.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정치체제가 왕정, 귀족정, 민주정을 혼합한 정치체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로원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민회와 집정관, 심지어 그들의 권한이 미칠 수 없는 평민회의까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감안할 때 이 시기 로마의 정치체제는 귀족정이었다고 보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집정관은 1년을 임기의 관직인데 반해, 원로원은 영구적인 국가기관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집정관은 집정관 임기가 만료되면 다시 원로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집정관이 원로원의 '권고'를 거스르는 정책을 실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원로원은 민회의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권리를 상실하게 되자, 원로원은 민회에 안건을 상정할 권한을 독점적으로 지니게 됩니다. 이로서 원로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은 민회의 안건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이 원칙적으로 미치지 '않아야'하는 평민회의에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평민회의의 의장은 '호민관'인데, 호민관은 1년 임기의 관직입니다. 원로원은 임기가 끝난 호민관에게 원로원 의석을 보장하여 호민관을 포섭합니다. 호민관은 모두 평민출신인데, 당시 평민출신으로 원로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귀족으로의 신분상승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민관이 원로원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쉽게 추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호민관이 자신의 임기를 끝마치면 원로원에 들어가는 관례를 공식적인 것으로 묘사하지만, 다른 책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호민관이 공식적인 경력을 일컫는 '명예로운 경력'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적 관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민계급의 성장으로 인해 귀족의 기득권은 조금씩 축소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갈등이 극단적으로 고조되어 있을 때 평민들은 군복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파업했고,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귀족들은 평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평민들의 권리가 조금씩 늘어가도 귀족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귀족과 평민은 전쟁이 끝날 때마다 분열했고, 이 분열은 카이사르의 등장 이전까지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이후에 외적의 침입으로 두 번의 위기를 맞았고, 내부적인 분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켈트족의 침입은 좀 자연재해와 같았고, 포르센나의 침입은 로마의 정치적 혼란 및 분열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로마는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두 번의 위기를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극복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귀족과 평민간의 내부적인 갈등은 오래도록 로마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에 이 대립은 로마가 내전을 벌이는 원인이 됩니다.


(1) : 허승일씨의 '로마 공화정 연구'라는 책(논문집)에서는 칸슐러 트리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두 가지의 학설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학설은 칸슐러 드리뷴을 행정적 필요와 연결한 학설입니다. 당시 로마는 지나치게 많은 전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군통수권은 오로지 2명의 집정관에게만 있습니다. 2명의 집정관으로는 3개 이상의 전쟁을 동시에 지휘하기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정관은 전쟁에 모든 노력을 쏟느라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칸슐러 트리분입니다. 칸슐러 트리분은 군 통수권을(임페리움) 가진 3~6명의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두 번째 학설은 칸슐러 트리뷴을 계급투쟁과 연관하여 설명합니다. 이 학설에 따르면 평민들이 콘술직을 개방해 달라고 귀족들에게 요청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이 요청을 받은 귀족들은 콘술직을 평민에게 개방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군 통수권을 지닌 칸슐러 트리뷴 직을 만들어 평민에게 일부만 개방하기로 하여 정치적인 타협을 이루어 냅니다. 허승일씨는 이 중 '행정적 필요'에 의한 학설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허승일씨도 칸슐러 트리분직의 창설 시기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자료가 정확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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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왕정의 두 번째 시기에는 에트루리아 계통의 왕들이 통치했습니다. 이 시기의 왕은 타르퀴니우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이렇게 세 명입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원래 에트루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에트루리아의 관계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세르비우스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르비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에서 에트루리아의 간접적인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타르퀴니우스의 손자라는 설이 있으므로 그 또한 에트루리아와 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이 왕들은 에트루리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왕들이 로마에 이주해온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한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사료가 적어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사료를 중시하는 <로마사>에서는 아예 왕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로마 왕정의 사료는 부족합니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에트루리아계 왕들은 상공업 종사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가 주도한 개혁들은 모두 로마에 사는 상공업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대하수도 즉 '클로이카 막시마(Cloaca Massima)'의 건설이며, 세르비우스의 주요한 업적은 로마의 세금제도 개혁입니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상공업의 활성화를 돕고, 세금제도 개혁은 상공업계층 종사자의 정치적 입지를 넓혔습니다. 이러한 상공업 우대정책으로 볼 때 이 왕들은 상공업 계층의 사람과 모종의 친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대하수도는 로마의 일곱 언덕 사이의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습지를 개간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에트루리아출신인 타르퀴니우스는 그 하수도의 용도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았을 것이고, 언덕 사이의 습지를 보면서 하수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사>에는 타르퀴니우스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수도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크게 타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수도를 통해 어떤 종류의 쓰레기를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수도의 건설은 로마의 인구 구성과 산업에 변화를 낳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타르퀴니우스 이전의 로마에는 그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행할 기술과 인력이 없었습니다. 기술과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라틴-사바니 왕조 시대에는 토목공사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저는 이를 간접적인 증거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수도건설에는 에트루리아의 기술자와 상인이 많이 참여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유입이 사실이라면, 하수도 공사는 로마에 에트루리아 세력을 크게 확장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이 많이 유입되었고 로마정부는 그들에게 많은 돈을 지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인이야기>의 주장에 따르면 하수도를 통해 개간된 언덕 사이의 습지에 공공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에트루리아출신 기술자와 상인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공사업은 세르비우스 왕 때에도 계속 이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예로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습니다. 정말로 세르비우스가 이 성벽을 세웠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세르비우스가 정말로 성벽을 세웠다면, 그 역시 공공건물 건축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르비우스 왕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군제 및 정치체제 개혁입니다. 세르비우스 이전의 로마 군제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는 세르비우스가 처음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재산을 바탕으로 시민의 등급을 나누었다고 합니다.(1) <로마사>에서는 최초에는 토지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고 후대에 재산을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었다고 하나, 이 개혁을 실시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개혁은 단순한 세금제도, 군사제도 개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로마는 각 계급의 시민이 부담해야 하는 병력 수에 따라 민회에 투표할 수 있는 표의 숫자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지 기준에서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제도를 바꾸게 되면 토지가 적으나 재산이 많던 사람들이 - 즉 상업, 공업 종사자 - 보다 많은 병력을 부담해야 하며, 민회에서 표를 보다 많이 얻게 됩니다. 결국 세르비우스의 개혁은 세금제도, 군사제도, 정치제도를 종합적으로 바꾼 것이며, 이는 상공업자의 정치참여를 보다 도왔을 것입니다. 다만, <로마인이야기>를 제외하면 민회의 투표방식에 대한 명확한 서술이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명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저는 다만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여러 역사책에 서술된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의 정책들은 모두 로마의 상업, 공업 계층의 사람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여러 역사책들의 서술이 일치하는 점을 감안할 때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우스는 상업과 공업계층의 사람들을 우대했을 것으로 강하게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감안할 때 <로마제국사>의 주장대로 로마 내부에 '상공업연맹체'와 '토지연맹체'라는 두 파벌이 생겼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마지막으로 로마의 왕정이 종식된 이유도 이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과 민회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사람의 아들 혹은 그 자신이 '루크레테리아'라는 여인을 강간했다고 합니다. 그 범행이 널리 퍼지자 혁명이 일어나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는 왕위에서 쫓겨나고 로마 공화정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은 거의 200년간 왕의 통치를 받았고 대부분의 왕은 로마를 성공적으로 통치했습니다. 세습에 의한 왕정은 로마에 알맞은 통치체제입니다. 우연히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같은 좋지 못한 왕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왕정을 버릴 만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이 덕 있고 현명한 사람을 찾아 왕으로 세우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사>에서는 왕정의 몰락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군주정 하에서 로마인들은 융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라틴-사바니족으로 대표되는 토지연맹체와 에트루리아로 대표되는 상공업연맹체로 분열되어 있었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낸 토지연맹체는 상공업연맹체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로마인이야기>에서도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의 몰락 이후 에트루리아인의 인구 유출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에 대한 두 왕의 우대정책이 사실일 경우 이는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정치투쟁만으로는 로마 공화정의 탄생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투쟁에서 이긴 다음에는 그들의 뜻에 맞는 왕을 선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로마 사람들은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왕정이라는 정치 구조에서 문제를 찾았을까요? 지금까지 잘 운영되던 정치체제를 그들은 왜 무너뜨렸을까요? 아쉽게도 로마 왕정에 대한 사료가 지나치게 부족하여 좋은 추측을 해보기 어렵습니다.


(1) :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은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근거했습니다. 번역본이 없어서 영문판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_-v (조낸 빡셌어요 ㅠ.ㅠ...) 다만 세르비우스가 '최초로'인구조사를 했다는 구절은 찾지 못했습니다. 세금납부 기준 및 계급 별 병력 제공 숫자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가 제시한 도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대부분 일치합니다. 그러나 리비우스는게 '1개 백인대가 1개의 표를 행사했다.'라고 명확하게 적지는 않았고, 투표방식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PS : 사료가 너무 적어서 추측으로만 쓴 점을 사과드립니다. 이 시기에 관한 자료가 그만큼 적습니다. 이제 사료 많은 부분 나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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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게도 로마 왕정에 대한 사료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애당초 초기로마에 대한 사료가 적었던 데다가 켈트족의 로마점령 당시 많은 사료가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사>는 사료의 부족을 지적한 후 로마의 왕정시기를 뭉뚱그려서 설명합니다. 반면 <로마인이야기>를 포함한 다른 책들은 왕의 이름과 업적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책들의 주장이 조금씩 달라 왕정시기의 로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로마의 왕정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라틴-사바니족 출신의 왕들이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왕들은 로물루스, 누마,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안쿠스 마르키우스 이렇게 네 명인데, 누마를 제외하면 모두 전쟁을 통해 국경을 넓힌 인물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들이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왕은 타르퀴니우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이렇게 세 명이 있습니다. 이 시기의 왕들은 에트루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여 로마의 상공업 발달을 도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라틴-사바니족 왕의 통치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다룹니다. 그 시기의 일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로마의 정치체제와 조합제도의 창설이라 생각합니다.
       로마왕정시기의 정치체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요소는 왕입니다. 왕의 권한에 대한 정의는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강 '정치, 종교, 군사, 외교, 내정의 최고책임자'정도로 생각됩니다. 저는 왕의 권한이 명확하게 지정되지 않았기에 왕의 성격에 따라 왕권의 범위도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단적인 왕은 보다 많은 일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했을 것이고, 온건한 왕은 많은 정책을 원로원과 민회의 승인 아래 추진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왕의 권한이 들쭉날쭉 했다면 왕권의 정의가 책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는 특이하게도 왕좌를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죽으면 민회와 원로원이 다음 왕을 선출했습니다. 이 원칙이 무시된 경우도 가끔 있기는 했지만요.
        로마왕정의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두 번째 요소는 원로원입니다. 원로원은 로마를 구성하는 각 씨족(혹은 가문) 지도자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의 총원은 100명이었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각 가문의 어른을 모으면 그 정도 숫자가 되었던게 아닐까.'라는 추정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원로원은 왕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적인 실권은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의 권한이 강하고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 제도가(1) 있던 로마에서 가부장들의 모임을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 번째 요소는 민회입니다. '쿠리아'라고 불렸던 민회는 무기를 들 수 있는 시민 전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민회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 즉 우리는 민회가 1인 1표제로 운영되었는지, 부족별로 한표가 주어졌는지, 집회에서 박수와 함성으로 의사를 결정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민회는 왕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정책을 재가하거나 거부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왕은 자신이 만든 정책의 가부를 묻기 위해 민회를 소집할 권한을 지녔으며 또한 민회의 의장이기도 했습니다.
       운영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정치체제는 로마와 합치고자 하는 새로운 민족이 로마의 정치에 참여하기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민족이든 자신의 대표를 원로원에 보내고 구성원들을 민회에 소속시키면 로마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제도는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에게 로마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적절히 나누어주는 데에 적합합니다. 피정복민족이라도 정치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은 불만이 있을 때 정치적인 해결책을 우선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원로원 의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에는 '삼니움족은 로마에 정복당한 지 40년만에 집정관을 배출했다.'라고 나옵니다. 이는 삼니움족의 유력자가 원로원 의원이라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또한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점령한 후 그 지역의 유력자들에게 원로원 의석을 많이 주었습니다. 이는 갈리아의 신속한 로마화에 도움이 되었고, 로마가 갈리아에서 많은 인재를 등용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이 정치적 방법으로 불만을 표한 사례도 있습니다. 로마의 세력이 커지자 이탈리아반도의 사람들은 호민관 드루수스를 통해 로마시민권을 청원했습니다. 그러나 드루수스가 암살 당하고 이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이 좌절되자 '동맹시 전쟁'으로 불리는 내전이 일어납니다. 피정복자에게 정치적 발언권을 줄 필요성을 나타내는 좋은 예입니다.
        로마의 정치체제 이외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 조합이 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에는 2대왕 누마가 이 조합제도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로마사>에는 지역적 조합이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암시가 있습니다만 이도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업별/지역별 조합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 <로마인이야기>와 <로마제국사>에서는 누마가 조합제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1대왕 로물루스가 죽은 직후 로마는 다음 왕을 놓고 라틴족과 사바니족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라틴족은 '당연히 왕은 우리부족에서 나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바니족은 '이번에는 우리부족에서 왕이 나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립하던 이들은 근처의 덕망이 높은 인물을 왕으로 스카웃 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누마를 왕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로마인이야기>와 <로마제국사>에서는 누마가 라틴족과 사바니족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직업별 조합을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누마는 이를 통해 종족 별 대립이 조합 별 경쟁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합니다. <로마사>에는 직업별 조합 이외에 지역별 조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로마의 주변 지역에는 양치기와 농부만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직업별 조합보다는 지역별 조합이 보다 타당한 선택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서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 각 조합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라틴-사바니족 간의 대립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합 자체가 정치적인 목적에 사용되어 로마의 대립과 갈등을 낳을 여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조합의 운영방식을 잘 조절하고, 조합끼리의 연대를 막으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합의 운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며 이 문제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직업조합을 보면서 감탄한 점은 문제의 해결방식입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은 소속감을 느낍니다. 소속감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위하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기 때문에 분열을 낳습니다. 누마는 소속단위로 분열하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두고 그 본성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합니다.
        왕이 라틴족인지 사바니족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능력 있고 도덕적인 왕을 선출하는 일이 중요할 뿐입니다. 따라서 왕을 놓고 벌어지는 부족간 대립은 소모적입니다. 그러나 수확량을 늘리는 일, 좀 더 단단한 호미와 쟁기를 만드는 일, 우리 동네에 필요한 우물을 파는 일은 로마인들에게 중요합니다. 아마도 조합은 로마 사람들의 관심을 이런 실제적인 문제로 돌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조합에 소속감을 느끼면 로마 전체의 생산량이 증가할 것입니다. 부족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때와는 많이 다른 결과입니다.
       이 두 가지 사례를 검토할 때 로마인들은 시초부터 다른 민족과 융화하는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피정복자와 합치는데 좋은 정치체제를 가졌으며, 민족 단위로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한 좋은 지도자를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로마는 주변의 민족과 합치면서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게 됩니다.


         (1)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 제도 : 고대 로마에 있던 독특한 제도이다. 대개 파트로네스는 귀족 출신의 유력한 가문이며, 클리엔테스는 그 가문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클리엔테스 역시 파트로네스를 도울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반드시 클리엔테스가 파트로네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관계의 성립과 유지에는 양자간의 신뢰가 핵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를 '힘의 차이는 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돕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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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반도 북부에 살던 민족입니다. 그들은 매우 발달된 산업과 기술,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설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제기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들이 에트루리아를 세웠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설은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시오스의 주장으로, 그에 따르면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 본토인이라고 합니다. 여러 역사책들은 이탈리아 북부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높은 문명을 가진 민족이 이주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사>에서는 그 근거로 에트루리아의 남부 지역에서만 급격한 묘실문화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듭니다. 이 사실은 이질적인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의 유입을 강력하게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들이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룬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철로 제작된 의치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제련기술, 의료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그들은 습지를 농지로 바꾸기 위한 배수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에트루리아에 높은 수준의 건축기술과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상업에도 뛰어났습니다. '티레니아해'는 '에트루리아인의 바다'라는 뜻인데, 이는 에트루리아인이 자국 주변의 해상무역로를 통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예술과 건축도 높은 수준을 자랑했는데 특히 초자연적인 사물을 묘사한 조각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록 후기에는 그리스의 예술에 밀려 그 독창성이 상실되었지만 그들의 뛰어난 작품 몇 점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중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늑대상'이 가장 유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위를 경계하는 듯한 무서운 표정의 늑대와 그 젖을 먹는 아기들의 모습이 마치 로마의 미래를 늑대가 지켜주는 듯 합니다. 이 외에도 아레초의 키메라상이 그 뛰어난 사실성으로 인해 유명하다고 합니다. 건축에서는 아마도 '아치'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성문, 하수구, 다리 등의 건설에 아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들은 종교와 정치에는 뛰어나지 못한 듯 합니다. 에트루리아의 종교는 공포스럽고 음울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사>에 '에트루리아인은 천국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그들은 지옥의 모습과 고통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벽화는 매우 낙천적인 분위기를 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근거로 <로마사>에서는 에트루리아의 종교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 <로마제국사>의 견해 - 반박합니다. 또한 에트루리아의 종교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있어 점치는 일과 징조를 해석하는 일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공포감만을 주는 종교나 미신적인 종교는 에트루리아의 번영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정치체제는 12도시의 연합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12도시가 단결해서 한 일은 단지 종교축제의 집행 뿐 이었다고 합니다. 각 도시는 서로 연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했으며 다른 도시와의 연합을 회피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에도  불구하고 에트루리아인은 밀집된 중장보병을 이용한 전술을 통해 이탈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습니다. 이 중장보병 전술은 보병 개개인에게 좋은 품질의 무기와 갑주를 지급할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트루리아의 군사력은 에트루리아의 기술력에 의존한 바가 큽니다.
        결국 에트루리아 가진 힘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닐까 합니다. 농업생산성은 습지의 개간을 통해 높아졌고, 그들이 만들 수 있었던 뛰어난 제품들도 그들의 기술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술은 상업을 위한 교역품을 만들 때에도 사용되었고, 그들의 군대를 강화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트루리아인은 기술력으로 이탈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에트루리아인들과 그들이 세운 12개의 도시들은 하나씩 차례로 멸망했습니다. 켈트족은 북쪽에서 그들의 도시를 차례로 멸망시켰고, 로마는 남쪽에서 그들의 도시를 차례로 멸망시켰습니다. 당시 대다수 야만족의 힘은 인구에서 나왔습니다. 켈트족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그들 역시 수십만의 병사로 에트루리아를 뒤덮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가 가졌던 힘은 단결력 이였습니다. 로마는 자신이 정복한 지방들이 가진 힘을 하나로 모을 줄 알았고, 그 힘을 통해 에트루리아를 멸망시켰습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던 에트루리아는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졌습니다. 만일 켈트족이 에트루리아를 흡수했다면 그들의 모든 것이 사라졌겠지만, 다행히도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기술을 배우고 후대에 전수했습니다. 결국 에트루리아의 기술은 로마를 강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알림 : <로마사>는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를 의미하고, <로마제국사>는 몬타넬리의 로마사를 의미합니다. 앞으로 제가 소개한 책은 이러한 방식으로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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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로마인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야심차게 기획한 작품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에 대한 통사를 쓰겠다고 결정하고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어 로마인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책의 각 권에 쏟은 시오노 나나미의 정성은 각별합니다. 각 권 끝에 나열된 참고문헌 목록이 그녀의 노력을 증명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연구기관이나 학교에 속하지 않고 홀로 로마사를 공부했는데, 아마도 그 덕분에 그녀만의 독특한 관점을 형성한 듯합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인지 이 책은 로마에 대해 매우 방대한 양의 지식을 제공합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고대 역사들이 쓴 글들과 현대 연구가들의 논문이 적절히 섞여 있습니다. 또한 시오노 나나미 자신의 깊이 있는 생각이 곁들여져 있기에, 이 책에는 생각해 볼만한 여러 주제가 보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해 쓰여진 로마에 관한 통사(通史)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입니다.
        이 책의 완성도를 이야기할 때 김석희씨의 훌륭한 번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석희씨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매끄럽게 번역했을 뿐 아니라, 각종 인용어구의 현장감을 잘 살렸습니다. 예를 들면 김석희씨는 카이사르의 개선식 때 병사들이 카이사르를 놀리는 말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시민들이여, 아내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같은 어구가 나오는 책은 몇 권 더 있지만, 병사들이 사용할 법한 낱말을 써서 어감을 살린 사람은 김석희씨 뿐입니다.
        이처럼 작자의 노력과 역자의 노력, 그리고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손해를 각오하고 좋은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노력 끝에 우리는 로마에 관한 좋은 역사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이 책은 나올 때마다 인문계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매년 초 이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매니아층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책이 유명해지다 보니, 요즈음 이 책은 로마사를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표준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이러한 이 책의 공적을 폄하할 마음은 없지만, 무엇이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 그에 따른 문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대성공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생각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은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그녀 스스로도 말하듯, 시오노 나나미는 '작가의 역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사료에 입각해서 쓰여진 '역사가의 역사'와는 달리, '작가의 역사'에는 사료에 입각한 상상력이 섞여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가적 감성을 로마사에 그대로 투영합니다. 그 결과 인물의 평가가 그녀의 기호에 지나치게 좌우된 듯합니다. 또한 사료 역시 그녀의 취향에 맞게 조금은 편파적으로 선택된 듯합니다. 이를 통해 로마의 정신과 카이사르는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며, 기독교와 키케로, 카토는 지나치게 낮게 평가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읽되,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짓과 진실이 분명히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있을 때 우리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생각과 역사적 사실이 뒤섞여 있을 때, 우리가 생각을 사실로 착각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올바르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정보를 뛰어난 능력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는 위험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 때문에 시오노 나나미가 제공하는 방대한 자료와 깊이 있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단점을 피하고 장점을 취하려면 시오노 나나미의 생각과 역사적 사실을- 사료 - 명확히 구분하고,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2. 도움받은 책들
        -1. 로마사 - 프리츠 하이켈하임 저(Fritz M. Heichelheim); 세드릭 A. 요, 앨런 M. 워드 개정; 김덕수 역; 현대지성사
       '로마인 이야기'를 '작가의 역사'라고 한다면,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는 '역사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고증이 철저하고 평가가 객관적입니다. 어쩌면 이 책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표준적인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역사가의 역사책이라 그런지 문체가 상당히 딱딱하고 무미건조합니다.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로마사를 읽는 재미를 느낍니다만,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로마사를 공부하는 지겨움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이 책은 군더더기 없고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상상을 통한 재미를 희생한 대신, 여러 역사가들의 관점을 각각 평가하고 종합하여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찾아냅니다. 심지어 사료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태도와 책의 내용으로 보아, 이 책은 원래 학부수업의 강의를 위한 교재로 만들어진 듯 합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줍니다. 그 어려운 작업을 하며 차분하게 앞뒤를 따져보는 저자의 태도는 로마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관점을 형성하는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우리에게도 신중한 자세가 길러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로마제국사 - 인드로 몬타넬리 저(Indro Montanelli); 김정하 역; 까치글방
       이 책은 로마사 전반을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사 전반을 연속적으로 파악하는데는 조금 미흡한 감이 있지만, 개별 사건이나 인물은 충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각 사건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특이합니다. 그 평가들은 심오하지는 않지만, 매우 직관적으로 사건을 나타냅니다.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칸나에 전투에서 전사자의 숫자가 조금 다르기도 하고, 사건의 세부적인 전개가 조금 이상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어떠한 사료를 참고하여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단점으로,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편견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단점은 기독교가 로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로마 후기로 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관점의 문제로 인해 그리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재미있고 직관적인 평가를 즐기는 관점에서 읽는다면 좋을 듯 합니다.
        -3. 로마 공화정 - 필립 마티작 저(Philip Matyszak); 박기영 역; 갑인공방
            로마 황제 - 크리스 스카레 저(Christopher Scarre); 윤미경 역; 갑인공방
       로마 공화정이라는 책과 로마 황제라는 책은 약간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을 쓴 필립 마티작은 공화주의적이며 도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이상주의적 관점을 취합니다. 마티작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로마 황제'를 쓴 크리스 스카레는 마티작과 대개 반대의 관점을 취합니다. 이처럼 두 책은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하지만, 모두 최악에 가까운 구성방식을 채택하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 책들은 모두 지나치게 인물 중심으로 서술을 한 까닭에 사건이 제대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두 인물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 각각의 인물이 소개될 때마다 사건이 새로 소개될 정도입니다. 각각의 인물이 하나의 사건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공정하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인물중심의 서술이 갖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삽입페이지를 많이 넣어 인물이 아닌 것들을 - 로마군의 특징, 12표법, 개선식 모습 등 - 소개하기는 합니다만, 삽입페이지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 연속적인 독해에 방해가 됩니다.
        특히 필립 마티작의 경우 사료에 대한 비판적 접근 능력이 부족하고 인물의 도덕성과 능력을 구분하지 않는 우를 범합니다. 성질이 조금 급한 사람의 경우, '로마 공화정'을 읽기 위해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 스카레의 경우 큰 결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마땅히 추천할 만한 점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저자의 특징을 반영하듯 '로마 황제'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그저 정리해 놓았을 뿐입니다.
       굳이 '로마 공화정'의 가치를 찾는다면, 일반적인 것과 다른 관점에서 잠시 생각해 보는 정도의 의미는 있을 듯 합니다. 썩 좋지 못한 책이라 해도 극단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면, 그 속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로마 황제'의 경우에는 특징적인 측면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리도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읽을 만 하지 않습니다.
        -4. 로마 문명사 - 도널드 R. 더들리 저(Donald Reynolds Dudley); 김덕수 역; 현대지성사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탄생에서부터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공화정말기에서 제정 초기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평보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단순하고 차분하게 로마에 있었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다른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잘 정리해 놓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역사를 쓸 때 정리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됩니다. 다만 이 책에도 몇몇 부정확한 서술이 있고, 몇몇 중요한 사건들이 간략하게만 요약되어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저자는 조금은 제정에 편향된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전반적인 측면을 한 번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를 읽기 전에 한 번 읽는 것도 괜찮을 듯 하군요. 워밍업이라고나 할까요.


       이 외에도 로마사에 관해서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사료와 논문을 제외하고 제가 구할 수 있는 범위로 한정한다면, 로마를 그 시초부터 다룬 책들은 이 네 가지가 전부인 듯 합니다. 유명한 '로마제국 쇠망사'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대한 간략한 서술로 시작하며, 허승일씨의 '로마공화정 연구'라는 책은 그라쿠스형제부터 시작합니다. 또한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전환 부분에 특화한 역사책들도 몇 권 보았습니다. 이런 책들은 앞으로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로마사에 대해 쓰기 때문에 로마사를 공부해야 되지만, 로마사에 대한 '글'을 쓰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 중 추천 할 만 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 - 움베르토 에코 저(Umberto Eco); 이필렬 역; 이론과 실천
        사실,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에코형님 만세.
       논문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학술적인 성격을 띄는 글을 쓰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자료조사, 글을 쓰기 위한 준비단계,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 쓰는 순서, 각 단계와 선택의 효과 등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코의 경험에 바탕한 매우 실제적인 조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과 복습을 잘 하세요!'라는 지겨운 충고에서 벗어나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2. 글 고치기 전략 - 장하늘 저; 다산초당
       문장에 대한 책입니다. 왠지 모르게 훌륭한 장인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 쓴 책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읽기 쉽고 깔끔한 문장, 문장 형태의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이 있습니다. 좋은 문장에 대해 다년간 강의를 한 저자의 경험이 책 속에 녹아있습니다. 그 모든 조언들을 지금 당장 따르기는 어렵지만, 글을 쓸 때 문장에 대해 한 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우리말 사용을 고집하다 보니 조금 지나친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저 옥의 티일 뿐입니다.
        -3.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 사이토 다카시 저; 황혜숙 역; 루비박스
       글의 구성과 분량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글의 구성에 대해서는 이 책보다 '글 고치기 전략'에서 체계적으로 다룹니다만, 이 책에서는 특징적으로 '기승전결'중 '전'을 제일 강조합니다. 또한 분량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합니다. 책 자체의 분량이 적은지라 가볍게 읽기만 해도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듯 합니다.
        -4.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저(Stephen King); 김진준 역; 김영사
       솔직히 글쓰기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스티븐 킹의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문장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글 = 원문 - 10%'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퇴고 시에는 초고에서 10%이상 분량을 줄이라는 말입니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최대한 빼고 압축적인 전개를 통해 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 외에도 수동태 사용 지양, 쓸데없는 수식어(형용사, 부사) 지양 등 간결한 글쓰기를 위한 조언들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실패에 굴하지 않는, 스티븐 킹의 열정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3. 목적 및 운영계획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 연재를 계획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글을 쓰는 능력의 향상입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체계적으로 적을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제가 학문을 하게 된다면 그 능력은 저의 생명과도 같게 될 것입니다. 학문을 하지 않고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각종 보고서를 쓰거나 서류를 작성할 때,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 때 글을 쓰는 기술은 필요합니다. 하다 못해 복학해서 레포트를 쓰는 때에도 글쓰는 기술은 필요합니다.  아니. 분량을 늘이는 기술과 인터넷 검색 기술, 사바사바 기술이 필요하겠지.
       두 번째 목적은 생각의 정리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제가 했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배열하는 일이지요. 로마의 역사는 그 정도의 수고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중해는 지정학적 조건상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 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그 지중해 전역을 수 백년간 통치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유지하는 동시에 하나로 엮어내는 재주가 없다면 대제국의 유지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재주는 생각의 교류가 용이해지고 활발해진 현대 사회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능력으로 봐서는 그냥 대가리를 땅에 박고싶지만, 저는 조금이나마 생각의 소통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위해 로마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 목적은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다지 좋지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은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한테서 나오기 마련이지요. 제가 좋은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로마사를 즐기는 분들은 대개 좋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알아가는건 분명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각각의 사람들이 로마사를 읽으며 느낀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앞으로 매주 수요일 밤에 '로마인 이야기'이야기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 선택은 제 마음대로 입니다. :P 주제는 리플들을 보아가며 유연성 있게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리플이 정말로 달린다면 말이지요. 분량은 아직 명확하게 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대략 1회당 A4용지 1장 내지 2장이 될 듯 합니다.

       아아. 한 집 건너 한 집 마다 괴수가 살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블로그 세계에서 글을 쓰려니 꽤나 걱정이 되는군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고대로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PS : 좀 길어서 세 번 접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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