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 빌어먹을. 세상사는건 왜이리 어렵단 말이냐. 뭐 하나 쉬운게 없다.

민간인이 되기 위한 준비로 놋북과 핸펀을 질렀다. (구입기와 사용기는 다음에 올릴지도 모른다.ㅋ)
이를 위해 용산 상인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한 생각.

'당위명제'란 간단히 '~해야한다.'로 표현되는 명제이다.
문제는 이게 사실명제와 구분이 잘 안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자. 내가 노트북을 사기 위해 협상을 벌이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상인 : 노트북의 가격은 135만원 입니다.
나 : 에이. 인터넷에 보니까 120에도 팔던데요. 125만 받으세요.

자. 노트북의 가격은 135만원인가? 125만원인가?
물론 정답은 '내가 최종적으로 거래한 가격'이다.
내가 이 노트북을 125만원에 산다면 친구들에게 '나 125만원에 샀어~'라고 할테고,
130에 산다면 '130에 샀어~'라고 할게다.
조금 다른 예로 가보자.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가보면 센스 Q35 A/C168모델의 가격은 140만원이라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노트북의 가격은 140만원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로 용산 전자상가 삼성매장에 가 보면 삼성전자 대리점에서도 몇 가지 물품을 끼워서 판다.
단지 가격만 140만원일 뿐이다.
자. 그렇다면 노트북의 가격은 얼마인가?
노트북을 사고난 다음에는 내가 지불한 돈에서 사은품의 가치를 뺀 금액이 노트북의 가격이 된다.
그러나 노트북을 사기 전에 '노트북의 가격은 얼마이다.'라고 이야기하는건 크게 의미가 없다.

조금 다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용산이 아니라 신세계 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에서 노트북을 산다고 가정하자.
대개 백화점에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판매자가 제시하는 가격대로 살 수밖에 없다.
(아씨. 글 길게 안 쓰려고 했는데 길어지네 -_-;;;; 귀찮음! Speed-Up!!!)
용산에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힘은 비교적 대등하다. 용산은 가격협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판매자가 집적된 곳이라 구매자가 새로운 판매처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백화점, 삼성 쇼핑몰에서는 판매자의 힘이 압도적이다.
내가 값을 깎아달라고 하면 직원은 '안팔아요'라고 이야기할거다.
굳이 많이 팔 필요도 없으며 백화점의 품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니까.

자자. 따라서 '노트북의 가격이 135만원이다.'라는 말은 사실명제이지만
그 용도를 감안할 때 '노트북의 가격은 135만원이어야 한다.'는 당위명제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한다.
나와 용산 상인의 대화를 다시 바꾸어보자.

상인 : 이 노트북은 135만원이어야 해요.
태식 : 이 노트북은 125만원이어야 해요.

자자자... 사전 설명 기일~게 했으니 본론 시작.

노트북의 원가는 일정하다. 상인은 이미 노트북의 본체 가격과 수송비, 점포 유지비 등을 지불했다.
따라서 노트북의 가격은 상인의 이익을 좌우하는 유일한 요소이다.
이러한 전제를 가정할 경우 노트북의 적정 가격은 얼마여야 하는가?
경제학적 질문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노트북의 적정가격은 얼마인가?'라는 질문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거시적인 윤리학으로 노트북의 적정가격을 산출해 보자.
가령 노트북의 적정 이윤율을 20%라 잡을 때, 원가 100만원인 노트북은 120만원의 가격을 받아야만 한다.
이것은 상인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가격으로 협상의 여지를 차단한다.
따라서 120만원과 다른 가격에 팔리는 노트북이 있다면 혹은 노트북에 사은품을 끼워준다면
불공정 거래행위로 제제를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정된 이윤율 설정이 불합리한가? 좋다. 수요와 공급을 통해 완벽한 이윤율을 가정해 보자.
노트북이 1대 팔릴 때 마다 적절한 이윤율을 산출해서 상인들에게 통보한다고 치자.
어찌되었든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이윤율과 다른 가격이 적용된 상인들에게 제제를 가할 수 있다.

노트북의 가격은 사람들의 합의 속에서만 존재한다.
노트북의 적절한 가격을 찾는 방법은 사실을 탐구하는 방법과 같을 수 없다.
적절한 탐구방식은 경제학 혹은 윤리학의 몫이다.
경제학이나 윤리학으로 노트북의 완벽한 가격을 산정해 낸다면 위와 같은 통제적 경제체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저런 경제체제는 실현될 수 없다.
또한 경제학, 윤리학적으로 계산된 완벽한 노트북 가격은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제거해버린다.
공정함이 실현되는 순간 또다른 종류의 공정함이 상실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완벽한 상황을 상정했을 경우이며 실제로 노트북 가격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
가령 구매자가 비교적 적고 성능이 좋은 하이엔드 노트북의 마진은 구매자가 많은 로우엔드 노트북의 마진보다 비싸야 한다.
양 노트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가치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이익을 얻는다는 전제를 가정하면 이 주장은 타당하다.
노트북의 성능은 적정한 이익율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기 충분하다.

노트북에서 떠나 물품의 적절한 이익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상실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윈도우즈나 인텔의 시피유가 적절하겠다. 물론 OS를 개발은 매우 어렵지만 그것이 수십만원의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또한 펜티엄 2, 3 시절에는 시피유 시장을 인텔이 독점했으며 그 폐해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이러한 독점기업의 횡포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가격담합도 문제가 된다.
일반적인 소비자가 가격담합을 하기는 어렵지만, 국가간 자원거래의 문제같은 경우 얼마든지 가격담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적절한 이익율에 대한 윤리적-경제적 지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적정 이윤율 문제를 두 가지로 나눌 필요성이 제기된다.
거시적 측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일 - 이것은 여러 학문들의 몫이다.
미시적 측면의 협상과정을 통제하는 일 - 이것은 물품의 거래 당사자들의 몫이다.


아아아.... 글을 발로 쓴 티가 난다. ㅠ.ㅠ... 이러면 글솜씨 안 느는데.
사실 표현하기도 어려워서 대강 주저리 주저리 적은거다. -_-;;
그저 잠깐 떠오른 생각. ( ㅌㅌㅌ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