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 두 번의 군사적 위기를 겪고 내부갈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군사적 위기를 잘 넘겼지만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내부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로마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는 반드시 단결했고, 위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내부적인 갈등요소가 있더라도 로마는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국을 건설할 지혜를 얻게 됩니다.
        두 번의 군사적 위기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포르센나의 로마 공격으로 인해 촉발되었고, 두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켈트족의 로마 점령을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센나와 켈트족이 물러간 이후에는 항상 라틴동맹의 내부분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라틴동맹'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즉, 내부분열의 원인은 로마에 반대하는 도시가 로마의 약화를 틈타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로마는 배신한 도시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백 년간 두 번이나 로마를 배신한 라틴동맹을 해체합니다. 그 대신에 새로운 동맹체제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연합'입니다. 새로운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이제 막 재정복된 라틴 동맹의 도시들이 갖고 있을 로마에 대한 증오감을 해소해야 했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힘에 상관없이 도시간의 견고한 결합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셋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로마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폅니다. 우선 동맹에 속할 각 도시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조약을 체결합니다. 첫 번째 등급의 도시는 독립을 상실하고 로마에 편입됩니다. 대신에 그들은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얻고, 스스로를 위한 자치정부를 갖습니다. 두 번째 등급의 도시는 '무니키피아'라고 불리며, 투표권이 제외된 로마 시민권을 갖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되, 관직에 선출되거나 관리를 선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들은 전쟁 발발 시 로마에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급여는 로마에서 지불하게 됩니다. 이 도시들 역시 자치권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등급의 도시는 '소키'라고 불리며 로마와 군사적인 동맹만을 맺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요청이 있을 때 자체 비용으로 병력을 지원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의 특성에 따라 다른 조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로마연합'의 모든 도시는 독자적인 외교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외교적인 관계는 오로지 로마와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국 시민이나 동맹국 시민을 파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이 도시들은 전략적 요충을 점거하는 동시에 각 도시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로마는 위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시들은 단지 외교권만을 상실하고 완전한 자치를 허용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낼 의무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군사력이 강한 로마를 통해 군사적인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가 관용을 베풀었으므로, '로마연합'의 첫 번째 목적은 달성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 도시는 자체적인 외교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도시가 연대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들을 차지했으므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은 근절되었고, 로마는 새로운 동맹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인 병력의 확보도 실현되었습니다. 모든 조약에 직접적으로 병력제공 및 상호방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는 '로마연합'을 통해 각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외교감각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도 '로마연합'과 같은 원리로 스위스의 내분을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우리나라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루어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마연합'체제에는 이런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의 세력이 연합에 가입한 각 도시와 전국에 퍼져있는 식민지로 분산되는 단점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가도'를 만들었습니다. '로마가도'덕분에 지역과 중앙의 연락이 쉬워졌으며, 유사시에 군대를 신속하게 모집하고 파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지적대로 로마인들은 정략적 목적으로 도로망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로마가도'를 역사가들이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마사>와 <로마제국사>에는 로마가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로마문명사>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대한 언급을 소홀히 합니다. 그들이 로마가도를 낮게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만드는데 들어간 인력과 물자와 자금과 노력을 생각할 때, 로마인들은 로마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로마인들이 로마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사를 다룰 때에도 로마가도를 자세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로마인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도로망 건설을 중시했으나,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와 같은 해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로마가도'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다루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에 한정해서 <로마인 이야기>는 다른 책들보다 뛰어납니다.
        결국 로마는 동맹국들의 배신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로마연합'이라는 뛰어난 외교정책이고 두 번째는 '로마연합'을 뒷받침하는 가도의 건설입니다. 이 두 요소를 통해 로마는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 어려운 과제의 해결책을 -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새에 - 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낸 그들도 자국 내의 계급투쟁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평민은 조금씩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했고, 귀족들은 조금씩 후퇴하면서도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수백년간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대립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로마인들은 전쟁만 터지면 신기하게도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로마에는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휴지기가 있기는 했지만 삼니움전쟁, 피로스와의 전쟁, 북이탈리아 정복전쟁, 1, 2, 3차 포에니전쟁, 마케도니아 전쟁 등이 거의 2세기동안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는 평화가 찾아올 때 까지만 평화로웠습니다.
        이 전쟁들의 사이마다 로마는 내부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분쟁의 대다수는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그때그때 일시적인 해결을 보았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의 통치체제 및 관직체계가 완성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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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 두 번의 군사적 위기를 겪고 내부갈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군사적 위기를 잘 넘겼지만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내부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로마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는 반드시 단결했고, 위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내부적인 갈등요소가 있더라도 로마는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국을 건설할 지혜를 얻게 됩니다.
        두 번의 군사적 위기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심화되었습니다. 첫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포르센나의 로마 공격으로 인해 촉발되었고, 두 번째의 군사적 위기는 켈트족의 로마 점령을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센나와 켈트족이 물러간 이후에는 항상 라틴동맹의 내부분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라틴동맹'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즉, 내부분열의 원인은 로마에 반대하는 도시가 로마의 약화를 틈타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로마는 배신한 도시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백 년간 두 번이나 로마를 배신한 라틴동맹을 해체합니다. 그 대신에 새로운 동맹체제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연합'입니다. 새로운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했습니다. 첫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이제 막 재정복된 라틴 동맹의 도시들이 갖고 있을 로마에 대한 증오감을 해소해야 했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힘에 상관없이 도시간의 견고한 결합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셋째로, 새로운 통치체제는 로마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로마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폅니다. 우선 동맹에 속할 각 도시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조약을 체결합니다. 첫 번째 등급의 도시는 독립을 상실하고 로마에 편입됩니다. 대신에 그들은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얻고, 스스로를 위한 자치정부를 갖습니다. 두 번째 등급의 도시는 '무니키피아'라고 불리며, 투표권이 제외된 로마 시민권을 갖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되, 관직에 선출되거나 관리를 선출할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들은 전쟁 발발 시 로마에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급여는 로마에서 지불하게 됩니다. 이 도시들 역시 자치권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등급의 도시는 '소키'라고 불리며 로마와 군사적인 동맹만을 맺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요청이 있을 때 자체 비용으로 병력을 지원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의 특성에 따라 다른 조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로마연합'의 모든 도시는 독자적인 외교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외교적인 관계는 오로지 로마와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국 시민이나 동맹국 시민을 파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이 도시들은 전략적 요충을 점거하는 동시에 각 도시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로마는 위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시들은 단지 외교권만을 상실하고 완전한 자치를 허용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낼 의무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군사력이 강한 로마를 통해 군사적인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로마가 관용을 베풀었으므로, '로마연합'의 첫 번째 목적은 달성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각 도시는 자체적인 외교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도시가 연대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전략적 요충지들을 차지했으므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은 근절되었고, 로마는 새로운 동맹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인 병력의 확보도 실현되었습니다. 모든 조약에 직접적으로 병력제공 및 상호방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는 '로마연합'을 통해 각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외교감각은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도 '로마연합'과 같은 원리로 스위스의 내분을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우리나라도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루어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마연합'체제에는 이런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의 세력이 연합에 가입한 각 도시와 전국에 퍼져있는 식민지로 분산되는 단점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가도'를 만들었습니다. '로마가도'덕분에 지역과 중앙의 연락이 쉬워졌으며, 유사시에 군대를 신속하게 모집하고 파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지적대로 로마인들은 정략적 목적으로 도로망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 '로마가도'를 역사가들이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마사>와 <로마제국사>에는 로마가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로마문명사>에는 정치적인 목적에 대한 언급을 소홀히 합니다. 그들이 로마가도를 낮게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만드는데 들어간 인력과 물자와 자금과 노력을 생각할 때, 로마인들은 로마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로마인들이 로마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로마사를 다룰 때에도 로마가도를 자세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로마인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도로망 건설을 중시했으나,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와 같은 해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로마가도'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다루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에 한정해서 <로마인 이야기>는 다른 책들보다 뛰어납니다.
        결국 로마는 동맹국들의 배신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로마연합'이라는 뛰어난 외교정책이고 두 번째는 '로마연합'을 뒷받침하는 가도의 건설입니다. 이 두 요소를 통해 로마는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 어려운 과제의 해결책을 -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새에 - 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낸 그들도 자국 내의 계급투쟁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평민은 조금씩 자신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했고, 귀족들은 조금씩 후퇴하면서도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수백년간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대립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로마인들은 전쟁만 터지면 신기하게도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로마에는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휴지기가 있기는 했지만 삼니움전쟁, 피로스와의 전쟁, 북이탈리아 정복전쟁, 1, 2, 3차 포에니전쟁, 마케도니아 전쟁 등이 거의 2세기동안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는 평화가 찾아올 때 까지만 평화로웠습니다.
        이 전쟁들의 사이마다 로마는 내부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분쟁의 대다수는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그때그때 일시적인 해결을 보았고, 그 결과 로마 공화정의 통치체제 및 관직체계가 완성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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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권하는 사회 - oldman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사실, 이 글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게 없고.....
(대략 너무 당연한 말인지라 -_-)

법정공휴일 더 과감하게 축소하라 - 문화일보
요기에 대해 할말이 좀 있군요. oldman님께서 공격하신 그 사설입니다.
사설 내용을 주욱 훑다가 재미있을것 같아 포스팅 (....)

1. 첫째 문단 마지막줄 : 선진국은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문장에 대한 근거가 없군요. 이 주장에 필요한 근거는 다음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공휴일을 축소한 선진국의 예.
  2. 그 선진국의 총 공휴일 수
따라서 이 사설은 명확하지 못한 사실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휴일 수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중요한건 '연간 노동시간' 혹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일 뿐이지요.
공휴일을 줄이자는 주장의 목적은 '공휴일을 줄여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공휴일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공휴일이 줄어든 목적을 달성할 수 없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휴일을 늘렸을 때 주당 노동시간이 늘어난다면, 이 사설은 공휴일을 늘리자는 주장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노동량의 증가가 주된 목적이라면, 공휴일 수를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2. 두 번째 문단 첫째줄 : 우리만 쉬는 날 확대에 매달리면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 경쟁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이 문장에서는 '생산성'이라는 단어와 '경쟁력 향상'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생산성'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핀만들기'를 예로 들어 봅시다.
분업을 하지 않으면 10명의 노동자가 12시간동안 11개의 핀을 만듭니다.
분업을 하면 10명의 노동자가 10시간동안 10개의 핀을 만듭니다.
'생산성'이라는 말이 '생산량'과 동의어일 경우, 분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분업을 하는 경우에 비해 생산성이 높습니다.
'생산성'이라는 말이 '단위 노동량당 생산량'일 경우, 분업을 하는 경우가 분업을 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생산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 경쟁'이 첫 번째 경우를 - 생산량 - 뜻한다면, 이 주장은 타당합니다.
노동시간이 많으면 만을 수록 생산량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생산성 향상 경쟁'이 두 번째 경우를 - 단위 노동량당 생산량 - 뜻한다면, 쉬는 날 확대 - 노동시간 증가 -와 생산성 향상 경쟁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경쟁력 향상 경쟁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분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두 번째 가운데 : 노사 협약을 통한 연차휴가와 경조사 휴가, 약정 휴무일 등을 합치면 연중 휴무일은 136∼146일이나 된다.
이 부분은 오류나 마찬가지입니다. 연차휴가와 경조사휴가는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정휴무일은 뭔지 모르겠심 -ㅅ-)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그냥 넘어가는 휴가인데, 그걸 모두 휴가일수에 합치는 행위는 부당합니다.
또한 직장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당한 연차나 경조사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따라서 보다 나은 통계자료는 '나라 별 근로자가 사용한 휴무일 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일 처음에서 지적했듯이, 이보다 더 중요한 통계는 '연간 근로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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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은 조낸 귀찮으며, 가끔은 쓸모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단어들은 우리의 마음에 드는 의미만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